신라 21대 소지왕(488) 정월 보름날, 명활산성에서 옛 궁성이던 월성으로 대궐을 옮겨 놓고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천천정에 행차하였다.
임금과 신하들이 거나하게 취하여 있을 때, 한 마리의 쥐가 상 밑으로 기어들고 한 마리의 까마귀가 나뭇가지에서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임금은 음식이 있는 곳에는 으레히 오는 짐승들이라 고기를 집어 쥐에게 던져 주었다. 고기를 받아먹고 쥐가 사람처럼 말했다.
“임금님, 저 까마귀 가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시오.”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임금은 그제서야 쥐가 나타난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날쌘 장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 가게 하였다.
까마귀는 동남 산으로 날아갔고, 장수는 까마귀의 뒤를 따라갔다. 까마귀는 장수를 기다리는 듯이 일천바위 위에 잠깐 앉았다가 피리마을 양기못 쪽으로 날아갔다.
장수도 부지런히 뒤를 쫓아 양기못으로 갔다. 양기못 가에서는 큰산돼지 두 마리가 무섭게 사우고 있었다. 송곳같은 어금니로 상대방을 떠받으며 밀리고 밀며 서로 힘을 겨루다가 그만 한 마리가 풍덩하고 물에 빠지니 떠밀고 가던 돼지도 뒤따라 풍덩하고 물에 빠지고 말았다.
돼지 싸움을 정신없이 구경하던 장수가 풍덩소리에 정신이 번쩍들었다. 그동안 까마귀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장수는 임금님 명령을 어기었으니 큰 벌을 받게 되었다고 못가를 두어번 돌다 주저 앉아 버렸다.
이때 못에서 파문이 일더니 머리도 하얗고, 수염도 하얗고, 하얀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물속에서 나타나서 “그대는 이 글을 급히 임금님께 갖다 바치라”하며 한 장의 봉투를 주고는 다시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장수는 너무도 뜻밖아라 절을 하고 달려와서 글을 임금님께 바쳤다. 임금님께서 글을 받아 열어보니 봉투 속에 또 하나의 봉투가 들어 있는데 그 봉투위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으리라.”라고 적혀 있었다.
임금님은 두 사람이 죽는 것 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은 일이니, 열어보지 말도록 하자 하고 그 봉투를 덮어 놓았다. 이 때 “아닙니다. 한 사람이라 한 것은 임금님을 가리키는 말이옵고, 두 사람이라 함은 평민을 가리키는 말이오니 그 봉투를 열어봐야 합니다.”하고 옆에 있던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여러 신하들도 그 말이 옳으니 봉투를 열어보라 아였다. 임금님께서도 하는 수 없이 그 봉투를 열고 글을 끄집어내어 읽었다. 사금갑(射琴匣)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거문고 갑을 활로 쏘라는 뜻이다. 임금은 곧 돌아와서 왕비의 침실 모퉁이에 세워놓은 거문고 갑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쿵! 화살이 박힌 거문고 갑에서는 피가 흘러 내렸다. 거문고 갑을 열어 봤더니 대궐안에서 불공을 맡아 보던 중이 궁주와 짜고 그 날밤 왕을 해치려고 거문고 갑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궁주와 중은 사형되고 살아난 임금은 하늘에 감사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정월 보름날은 짐이 생명을 구한 날이니 오곡밥을 지어 제사드린 후 쥐와 까마귀에게 밥을 주라 명령했음으로 사람들은 오곡밥을 쥐와 까마귀 복시로 담위에 얹어놓는 풍속이 생겼다. 그 후부터 양기못은 서출지로 불리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