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북면 봉길리 해변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다중에 문무왕의 유골을 화장한 뒤 뼈를 뿌린 곳으로 알려진 대왕암이 있다. 문무왕은 "죽어 동해바다의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며 죽은 후 화장을 해서 뼈를 동해에 뿌리고 장례절차는 검소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인 신문왕은 그 유언을 따라 동해 중에 있는 바위에 유골을 뿌렸다고 하는데 신라에서 불교식 화장을 한 최초의 기록이다.
멀리서 보는 대왕암은 평범한 바위섬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바위 한가운데가 못처럼 패어 있고 둘레에 자연암석이 기둥 모양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모습이다. 한 변의 길이 약 3.5m 되는 못 안에는 거북이 등 모양의 길이 3m, 폭 2.2m의 돌이 얹혀져 있다. 못 안의 물은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며, 거센 파도에 아랑곳없이 항상 맑고 잔잔히 흐르도록 되어 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트인 십자형의 수로를 통하여 동쪽으로 들어온 물이 서쪽으로 난 수로의 턱을 천천히 넘어 다시 바다로 흘러나가고 있다.
문무왕은 신라 제30대 왕으로 태자로 있으면서 백제정벌에 참전하였고, 재위 중에는 고구려를 정벌하여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통일 후 한반도를 잠식하려는 당의 야심을 알아차리고는 고구려와 백제 유민을 융합하여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살아서 삼국을 통일했을 뿐 아니라 죽어서는 용이 되어 신라를 침범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일념을 가진 호국의 군주였다.
대왕암이 보이는 언덕 위에는 "이견대"라는 누대가 있는데, 利見이란,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데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라는 『주역』에서 나온 말이다.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설화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만파식적은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하늘의 천신이 된 김유신장군과 합심해서 용을 시켜 보낸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피리로 이것을 불면 천하가 화평하고 재난이 방지되었다고 한다.